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46) 제3계명 예배의 태도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제 36 주일(문 99,100)  

요절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문 99 : 제3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저주나 위증이나 필요 없는 맹세를 함으로 하나님 이름을 더럽게 하거나 악용해서는 안 되며 또한 우리의 침묵 혹은 묵인하에 그러한 무서운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의 거룩하신 이름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종국에 가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하고 부르며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에서 그 분에게 올바르게 고백하며 경배하여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문 100 : 맹세나 저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죄는 그런 저주와 맹세를 막거나 금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진노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입니까?

 :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크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는 사형으로 처벌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해설  

지난번 공부를 통해 제1계명은 ‘예배의 대상’에 관하여, 제2계명은 ‘예배의 방법’에 대한 계명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제3계명을 공부하면서 ‘예배의 태도’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합니다.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라고 명하고 있다. 여기서 ‘일컫는다.’(take the name of the Lord)라는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이 같은 제3계명이 요구하는 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1. 여호와의 이름을 이용하여 죄를 짓지 말라.

‘망령되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어 성경에서는 이 말을 ‘쓸데없이’(in vain-RSV, NKJV), ‘오용’(misuse-NIV), ‘악을 목적으로 하여’(for evil purpose-TEV)로 번역했음을 참고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헛되게(in vain)

먼저 생각하게 되는 의미는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즉 헛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표현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이 헛되게 생각하고 사용하고 부르지 말라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을 우상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시편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4-8) 

그런데 경배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께 아무런 의식 없이 너무나도 쉽게 “주여! 주여!”하며 중언부언하고(마 6:7), 그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여 하나님께 간청하고 복을 빌고 그러다가 아니면 말고 식의 의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생각과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상과 같이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84

(2) 을 목적으로(for evil purpose)

‘망령되이’란 말 속에는 ‘악을 목적으로’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이는 적극적인 범죄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저주, 위증, 필요 없는 맹세를 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거나 더럽히는 행위’를 뜻한다. 율법은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강력한 규정을 두고 이를 경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 24:15,16)

하나님께서는 이 같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저지르는 범죄는 즉각적으로 그를 단죄할 것을 명하셨다. 그럼에도 흔히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를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혹은 자기의 주장을 확실하게 관철시키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불필요한 맹세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이런 거짓된 행위를 금하는 명령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죄인들에게 이용당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는 결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3) 볍게(priceless)

질문 99에 대하여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에서 그 분에게 올바르게 고백하며 경배하여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는 우리의 모든 언사(言辭)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함을 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존중되고 아름답게 드러나며 모든 사람들에게 위엄 있는 존재로 인식되도록 신중하고 무겁게 행동해야함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구미 영어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미명(美名) 하에 너무도 자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볍게 사용하고 입에 담지 못할 언사를 행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는 것을 볼 때 십계명 가운데 가장 무시되고 또한 오용(誤用)되고 있는 명령이 아닌가 싶다. 결코 이러한 언사를 가볍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여호와의 이름을 이용한 소극적인 죄도 짓지 말라.

질문 99의 답 중 “또한 우리의 침묵 혹은 묵인 하에 그러한 무서운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성도가 자신의 바른 신앙적 태도를 유보(留保)한 채 죄의 현장에서 무언의 동조(同調)로 죄에 가담하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즉 성도가 신앙적으로 명백하게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상황에서 자기에게 불리할 경우 법이 보장하고 있는 바라고 합리화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위증 혹은 침묵함으로 초래되는 동조행위 등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율법에 보면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레 5:1)라고 경고하며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잠 29:24)라고 교훈한다.

3. 제3계명은 삶의 현장에서 요구되는 고백적 계명이다.

위에서 보듯이 이렇게 제3계명의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악을 목적으로 헛되게, 거짓되게, 가볍게’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사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또한 그 명예를 더럽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주로 자기 합리화와 자신의 견해 내지는 입장의 정당성을 주지시키기 위한 생각에서 나오는 습관적인 행동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

(1) 정직하고 분명한 언사(言辭)

오늘날 현대인들의 언사는 명백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 인 것 같습니다.” 등의 표현과 같이 애매모호하게 표현하여 무슨 생각인지 의식인지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지가 분명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언사에 있어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할 것을 명하셨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야고보 선생 역시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약 5:12)고 교훈한다.

이러한 말씀들은 모든 성도가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정직함으로 행동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러한 언사를 신중하고 사려 깊게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기뻐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렘 4:2)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헛된 언사를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 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준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순종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을 돌리게 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2)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언사(言辭)

의미 있는 예화 하나를 소개한다. 프랜시스(St. Francis)가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전도하려고 나섰다. 어느 동네에 어린아이 하나가 혼자 놀고 있었다. 프랜시스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한 시간을 그 아이와 놀아 주었다. 그 곳을 떠나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고는 그 밭에 들어가 한 동안 밭일을 도와주고 또 동네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이것저것을 찾아 도와주었다. 저녁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온 프랜시스는 “너희들이 오늘 전도하느라 수고 많이 했다!”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때 제자들이 “선생님은 한 번도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한 적이 없는 데 전도했다고 하시네요?”라고 되물었다. 그때 스승은 “바로 너희의 얼굴과 언행에서 이미 예수가 전달되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르게 예수를 믿지 않아서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는가! 얼마나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를 많이 하고 있는가! 성도의 말과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신실한 믿음의 행위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교회와 성도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걸 맞는 언사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롬 2:24)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성도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분명하게 이 점을 지적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 같은 교훈은 바울 서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 2:8-10)고 모든 성도들이 언사에 있어서 신중하게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강하게 권면했다.

4. 제3계명과 성령 훼방 죄

질문 100에서 ‘맹세나 저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죄’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가장 흉악한 죄이기에 당연히 사형으로 처벌할 것을 가르친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맹세하고 저주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부인하고 모독하는 것으로 ‘성령 훼방(毁謗) 죄’를 저지르는 행위라 하겠다.

율법에서 이러한 행위를 강력하게 금지하도록 명했고,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24:5b-16) 고 했다. 예수님도 ‘성령 훼방 죄’는 사하심을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셨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b-32)

성도가 성령의 역사 가운데 고백한 바른 신앙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온전히 신뢰하고 고백하지 못하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사용하는 행위는 자기 마음속에 계신 성령의 역사하심을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배척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말씀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점을 적시하여 모든 성도들이 신중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언사에 있어서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

5. 제3계명의 강력한 경고

제3계명은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는 바른 성도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온전히 고백할 것을 명하시는 말씀이다.

오늘날 종교다원주(宗敎多元主義, religious pluralism)의 사회 속에서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명백하게 고백하는 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제3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고 누구 앞에서든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며 바른 고백을 천명할 것을 요구한다. 시편 기자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라고 고백한다. 과연 이 말씀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의식 있는 성도가 얼마나 있을까? 이러한 성도와 교회가 정말 요구되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가볍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사용하고 습관적 혹은 관습적으로 욕을 해 대는 자들을 용서하시지 않는다. 이 모든 언사가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레 24:16)며 그러한 자를 신앙 공동체에서 제거할 것을 명령하셨다. 이는 바른 신앙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치며 경고하시는 명령인 것이다.

결론

제3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세상은 성도와 교회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망설여지는 이유가 바로 이 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는 성도와 교회의 실패 때문은 아닐까?”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믿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욕먹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고 했고 또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고 명했다.

사도 베드로 또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5-17)고 권면했다.

이러한 사도들의 권면들은 과거 초대교회 시대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지식사회 시대, 고도산업화 시대에서도 바르게 믿고 확신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하는 신실한 성도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봉사의 삶을 통하여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경험하며 고백하여 구원의 주 예수를 믿고 바른 신앙을 가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오로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성도와 교회는 말씀대로 전할 뿐 아니라 말씀대로 생활하고 세상에 대하여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기에 성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역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나의 삶 속에서 온전히 드러날 때 비로소 그 분의 이름이 높여지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삶을 을 살아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