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32) 소요리문답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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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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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문 성도가 죽을 때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습 니까?

답 : 성도가 죽을 때 그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1) 즉시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고(2)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3) 부활 때까지 쉬게 되는 것입니다.(4)

(1)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히 12:23)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3)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4)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사 57:2)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사람은 누구나 다 예외 없이 죽는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 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이다. 성도가 죽으면 그 영혼은 즉시 천국으로 가고 몸은 예수님 재림 때가지 기다리게 된다. 성도의 영과 몸이 완전한 상태로 천국을 누리려면 예수의 재림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과 예수님의 재림 때와 둘 사이에 시간적이 간격을 생각하게 되는 데 이것이 ‘중간기 상태’라는 이론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육체와 영혼(또는 영) 즉 이분 적으로 만드셨다.(제 8과 참조) 그리고 인간의 죽음은 이간의 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말하다. 죽음을 통해 영혼과 분리 된 인간의 육체는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창 3:9 행 13:36) 이처럼 죽음의 결과 인간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신자나 불신자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 된 영혼의 상태는 신자와 불신자간에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신자의 영혼은 즉시 거룩하게 되어 영광의 세계로 옮겨진다.(눅 23:24 계 14:13 눅 16:19-31) 그러나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기 시작 한다. 즉 인간이 죽은 후에 육체적 중간상태는 신자나 불신자나 같다. 영혼의 상태는 신자와 불신자가 전혀 다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혼과 결합 될 신자의 영혼은 주님의 재림 때가지 어떤 상태로 있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며 많은 이단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이단 가운데 몇 가지를 살피고자 한다.

1. 영혼 수면설은 성경적이 아니다.

영혼 수면설(靈魂睡眠設)은 죽은 자의 영혼이 주님 재림 때가지 의식이 없는 잠자는 상태와 같이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성경은 신자의 죽음을 잠(수면, 睡眠)으로 표현했다. 반면에 성경에 불신자의 죽음을 이 이렇게 잠으로 표현한 곳이 없다. 이것은 신자의 죽음이 인간의 잠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 있기 때문이지 결코 성경이 표현하는 잠이 죽기 이전의 인간이 잠을 자는 상태와 꼭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잠자는 자와 죽은 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유사성들을 볼 수 있다.
(1) 죽은 육체는 잠자고 있 는 육체와 너무도 유사하다. 잠 자고 있는 사람은 죽은 듯이 보일 수 있고 죽은 사람은 잠자고 있 는 것처럼 보인다.

(2) 죽은 사람은 세상에서 일 어나는 사건들을 더 이상 의식할 수 없다. 이것은 사람이 자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3) 그러나 자고 있는 때에라도 산 사람의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잠자는 동안 사람들이 꿈을 꾼다는 사실에서 명백하다.

이렇게 죽은 자와 살았으나 잠자는 자의 외형적인 모습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성경이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을 잠자는 자로 표현했다. 그러나 죽은 자와 잠자는 자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과 수면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 수면설(靈魂睡眠設)은 성경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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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옥교리는(Limbo) 성경적이 아니다.

연옥(煉獄) 교리는 장소적으로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점이 있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이다. 성도가 죽으면 하나님이 보실 때 성자와 같이 아주 거룩한 자 외에는 모두가 다 이 천국과 지옥의 중간 장소인 연옥에 서 대기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intermediate state) 그래서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연옥에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완전하게 정결하게 하기까지 그들의 죄의 형벌을 일시적으로 겪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 채우지 못한 거룩함의 정도에 따라 어떤 사람은 아주 오래 머물게 되고 어떤 사람은 잠간 동안만 머물다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또 연옥에 머무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아직 죽지 않고 세상에 살아 있는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연옥에 간 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 헌금, 선행 등으로 공을 들이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사람이 지어낸 주장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연옥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의 백성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다는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요 참 성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린 단번의 희생 즉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성도들을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거룩하게 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3. 스올(Sheol)과 하데스(Hades)

구약의 저자들은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의인과 악인 모두 음부(스올)로 내려간다고 보았다. 의인에 대하여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시 89:48)하였으며, 악인에 대하여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민 16:33)고 하였다. 따라서 ‘스올’은 죽음이 인간 존재의 종국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약적 표현 방법’이다. 또 ‘스올’이란 용어는 구약 성경에서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벌코프에 따르면 ‘스올’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죽은 자의 거처나 죽음의 상태를 나타낸다.(삼상 2:6) 그 곳은 어둡 고 컴컴한 곳(욥 74:13), 적막하며(시 94:17), 망각의 땅이다.(시 88:12)

둘째, 지역적인 의미로 무덤을 나타낸다.(시 141:7: 시 6:5; 전 9:10)

셋째, 악인에 대한 형벌의 장소 즉 지옥을 의미한다.(시 9:17, 49:14; 잠 15:11,15:24)

벌코브나 뵈트너는 스올이 때로 지옥을 의미한다고 보는 데 비해 안토니 후크마는 스올이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4. 성도는 영혼뿐 아니라 그 육체도 구원을 받는다.

금욕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아무 관계가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요리문답은 죽은 자의 육체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성도의 경우 육체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신자의 영혼에 관여하시듯이 신자의 육체도 관여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이렇게 말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 19:26,27)는 말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요 5:28,29) 그래서 죽은 성도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빛나는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될 주님 재림하실 그 날까지 일 뿐이다.

5. 중간상태가 성도의 소망이 될 수 없다.

죽은 성도의 중간상태가 최종적이며 소망의 완성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8에서 그리스도인의 중간상태가 성도의 소망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1-8)
이렇게 사도 바울도 이 중간상태에서 육체를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하면서도 그의 큰 소망은 부활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도록 덧입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자의 중요한 소망은 그러한 중간상태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스스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롬 8:23)

6. 그러면 죄 용서 받은 성도가 왜 죽어야 하는가?

또 죽음과 관련해서 죽음이 죄의 삯이라면 왜 성도는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는데도 죽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대요리문답은 이 질문에 몇 가지로 대답해 준다.

(1) 죽음이 영원히 죽을 날이 온다.(고전 15:26)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영원히 다시는 성도들을 지배할 수 없는 날이 온다. 바로 주님이 다시 오셔서 주님과 같은 변화 된 빛나는 몸으로 성도의 육체가 부활할 때이다.(고전 15:54) 그러므로 결국 성도는 육체의 죽음에 대해서도 영원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2) 성도에게는 죽음이 쏘는 그것을 상실 당했다.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들에게는 성도가 죽기 이전에도 죽음(死亡)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죄를 미끼로 지배하는 영향력(쏘는 것)을 발휘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 15:55,56)
(3) 성도의 죽음은 성화의 한 과정이다.

비록 육체의 죽음이 여전히 성도들의 원수(怨讐)이며 우리의 두려움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죽음조차도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실 것을 확신시켜 준다. 즉 성도의 죽음은 성도의 성화(聖化)의 한 수단(手段)이요 과정(科程) 일 뿐이라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시 육체적 죽음을 연기하시고 그 기간에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

인간은 날 때부터 허물과 죄악 가운데서 죽어있다.(엡 2:1)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쳤다.(창 2:17 롬 5:12) 그렇다면 인간의 죽음은 육체의 숨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범죄 했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하나님의 진노와 파멸의 웅덩이에 던져졌을 때 이미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의 삯인 죽음에 처해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비로써 이 육체적 죽음의 종말이 도달하는 과정을 연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과정을 연기하신 그 기간에 구원하시는 은혜로써 택하신 자들을 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건지신다. 우리 영혼이 거듭날 때 그것이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요 5:24)

7.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 또한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구워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멸망의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구원하신 것처럼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육체 또한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구원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5-29)

하나님이 아직 신자의 육체를 죽음에서 구원하시지 않는 것은 구원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가 이 세상에 계속해서 함께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야만 버림받은 자에 대해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자들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주님의 재림과 함께 자신의 택하신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모두를 불러내실 그때는 인간의 육체적 죽음 자체도 사라질 것이다.(*)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