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

기독교 순교사화(13) 가톨릭의 핍박이 시작되다

기독교 순교사화(13)
가톨릭의 핍박이 시작되다

여 성도들도 남 성도와 꼭 같이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여 성도들도 남 성도와 꼭 같이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2. 상상을 초월한 온갖 고문

(1) 오토다 페(Autoda Fe)

(2) 마드리드 대광장의 그리스도인 화형(火刑)

다음은 1683년 마드리드에서 거행된 잔인하고도 괴상한 사건 하나를 세세하게 묘사한 이야기다. 종교재판소 직원들이 트럼펫과 북을 앞세우고 기를 들고 3월 30일 대광장에 있는 궁전까지 기마행렬을 했다. 그들은 6월 20일 죄수들의 사형집행이 있을 것이라고 외쳤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마드리드에 그와 같은 광경은 없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그 날을 마치 축제와 승전 축하 일처럼 기다렸다.

약속한 날이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대광장에는 큰 사형대가 세워졌다. 그리고 아침 7시부터 저녁까지 남녀 죄수들이 그 곳으로 끌려 나왔다.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종교재판관들은 자기들이 데리고 있던 죄수들을 모두 마드리드로 데려 왔다.

배교(背敎)하여 회교도가 된 한 사람과 함께 20명의 그리스도인 남녀가 화형 당했다. 억압에 못 이겨 자기 죄를 인정한 50명의 남녀 유대인들이 노란 모자를 쓴 채 장기수감 언도를 받았고, 중혼, 마녀 등 다른 범죄자 10명은 채찍에 맞고 나서 노를 젓는 배의 노예로 선고받았다. 그 큰 행사에 전 스페인의 법관이 모두 참석했다. 거대한 재판관의 자리는 왕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에 놓여 있었다. 영국의 장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귀족들이 화형 당할 죄수들을 인도했고, 그들을 굵은 밧줄로 묶어 붙잡고 있었다. 나머지 죄수들은 재판소 직원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고난당하는 사람 중에 17세쯤 되어 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유대인 소녀가 있었다. 사형대가 있는 쪽에 여왕이 앉아 있었는데 그 소녀는 사방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가슴 아픈 탄원을 여왕에게 했다. “위대하신 여왕이시여! 당신은 이같이 비참한 처지에 있는 제게 도움이 될 수 없을까요? 저의 연소함을 어여삐 보소서. 그리고 저는 갓난아기 때부터 젖어 있던 종교 때문에 이와 같이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해주십시오.” 여왕은 그녀의 비통한 절규에 크게 동정했다. 그러나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선포된 사람을 위해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눈을 돌리고 말았다.

사형수들을 위한 미사가 시작되자 사형대 가까이 놓여 있던 제단에서 신부가 나와 그를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우두머리 재판관이 법의를 늘어뜨리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원형극장에서 내려왔다. 그는 제단을 향해 인사를 한 뒤 왕이 있는 발코니로 올라갔다. 그의 뒤로 직원 몇 명이 십자가와 복음서 그리고 스페인 왕이 가톨릭신앙을 보호하고 이교도들을 근절시키며 종교 재판소의 경영과 법령을 전력을 다해 지지하겠다는 맹세가 적혀 있는 책을 들고 뒤따랐다.

재판관이 다가와 그 책을 내밀자 여왕은 왕관을 벗고 일어나 그 맹세를 지키겠다고 대독시켰다. 그 후 재판관은 자기자리로 돌아가고 재판소 서기가 강단 같은 곳에 올라서서 고문들과 위원들에게 같은 맹세를 하도록 할 때까지 왕은 줄곧 서 있었다. 미사는 낮 12시쯤 시작해서 밤 9시까지도 끝이 나지 않았다. 죄수들의 죄를 너무나 장황하게 큰소리로 선포하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에 21명의 남녀의 화형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나타내는 용맹은 정말 놀랄 만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전혀 굽히지 않는 꿋꿋한 태도로 손발을 불길 속에 내밀었고, 모두가 너무나 굳은 결심으로 그들의 운명에 굴복하기 때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관중들은 그러한 영웅적인 영혼들이 좀 더 광명을 보지 못하는 사실로 인해 애통해 했다. 왕의 자리가 사형수들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죽어 가는 신음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여왕은 거기 있고 싶지 않아도 그 가슴 아픈 광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의식이었으므로 재판 식 때 한맹세로 인해 왕은 법정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속임수와 공갈협박으로 일관 된 종교재판

29202때때로 죄수들은 자기가 어떤 선고를 받는지 혹은 적어도 언제 재판을 받는지조차 모른 채 몇 개월씩 지내곤 했다. 그러면 결국은 간수가 그에게 재판을 받겠다는 탄원을 하라고 말해 주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그는 검사를 받기 위해 머리를 다 깎였다. 그들이 법정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간수는 법관들에게 그들이 이르렀음을 알리기 위해 문을 세 번 두드렸다. 한 재판관이 종을 울리면 수행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죄수가 들어가도록 허락하고 의자를 내어주었다. 그러면 죄수는 의장 앞에 꿇어 앉아 그 앞에 놓여 있는 책 위에 오른손을 얹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그 명령대로 하면 질문이 떨어졌다. “너는 거룩한 재판소의 비밀을 지키고 진실을 말할 것을 약속하는가?” 그가 만약 부정적인 대답을 하면 그는 그 길로 다시 감방에 보내져 잔인한 고문을 받았다. 그가 만약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면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라는 명령을 받고 조사가 진행되었다. 의장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서기가 질문과 대답을 다 기록했다. 조사가 끝나면 다시 종이 울리고 간수가 나타나고 죄수는 물러가라는 명령을 받고 다음과 같은 권면을 들었다. “기억을 잘 더듬어서 네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들을 다수집해 놓아라. 이곳에 다시 불려올 때 그것들을 이 거룩한 재판소에서 진술하도록 하라.”

죄수가 솔직하게 고백했고 즉시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는 사실을 통고 받으면 간수와 수행원들은 그의 솔직함에 대한보상으로 꾸민 친절을 보이면서 그에게 절을 시켰다. 이삼 일 뒤 그는 두 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끌려와서 똑같은 절차를 받는다. 재판관들은 종종 죄수들에게 그들이 만약 스스로를 정죄 한다면 큰 자비를 베풀겠다고 약속하고 심지 어는 석방시켜 주겠다고 말함으로 그들을 속 였다. 그러한 속임수에 빠진 불행한 사람들 은 종종 자신의 단순함으로 희생이 되고 말 았다. 재판관들은 고문을 세 번만 하도록 허 용했지만 매번 너무나 심하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죄수는 그 고통으로 죽든지 평생 불 구가 되든지 했다. 다음은 고문으로 인해서 심한 고통을 받은 사건을 조사한 것이다.

첫 번째 고문,

죄수가 저지른 범죄를 모두 자백하라는 재판관들의 사악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은 죄 수는 즉시 고문실로 끌려갔다. 6명의 천박한 사람들은 고문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가 즉시 죄수의 속옷까지 다 발가벗겼다. 그런 뒤에 그들은 그를 바닥에서 약간 높은 일종의 단위에 눕혔다. 그들은 그의 목에 쇠로 만든 칼라를 대고, 발가락에 쇠고리를 채우고, 단위에 단단히 묶었다. 그의 사지를 꽉 펴서 두 팔과 두 다리를 밧줄로 두 번 묶었다. 밧줄은 발판 밑에 나 있는 구멍으로 해서 네 사람이 사방으로 동시에 잡아당겼다. 즉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된다.

가는 밧줄은 죄수의 살을 뚫고 뼈에까지 파고 들어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가 만약 재판관이 요구하는 고백을 하지 않으면 밧줄은 그와 같은 상태에서 계속 네 번씩 잡아 당겨졌다. 외과 의사와 내과 의사가 참관하고 있다가 종종 맥을 짚어 보고 그가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가를 판단했다. 위험해지면 그의 고통은 잠시 중단되지만 그것은 더 심한 고문을 하기위해 그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마지막 밧줄이 당겨질 때 그는 극도로 쇠약해져서 혈액 순환이 멈추고 그는 고통으로 인해 기절해 버린다. 그제야 그를 풀어 감방으로 데려갔다.
두 번째 고문,

6주 후에 죄수는 또 한 번 고문을 당하기 위해 끌려 나갔다. 그 고문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은 그의 팔을 뒤로 돌려서 손바닥이 뒤에서 뒤집어지도록 한다. 손목을 밧줄로 꼭 묶은 후 두 팔이 일직선으로 맞닿을 때까지 기계로 밧줄을 잡아당겼다. 이렇게 심하게 비틀려진 결과 두 어깨의 관절이 삐고 입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이러한 고문을 세 번 반복한 다음 그는 감방으로 보내지는데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가 와서 삔 관절을 맞추면 그는 가장 극심한 아픔을 맛보게 된다.

세 번째 고문,

두 번째 고문을 당한지 두 달 후 죄수가 약간 회복이 되면 다시 고문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형벌을 연거푸 받았다. 고문 집행자들은 두꺼운 쇠사슬로 그의 몸을 두 번 칭칭 감고 배에서는 서로 엇갈리게 하여 손목까지 묶었다. 그런 뒤에 그들은 그를 두꺼운 판자에 대놓고 안쪽 손목에 묶은 쇠사슬을 도르레 끝에 끼웠다. 그러고 나서 집행관들은 도르레 끝에 달린 밧줄을 그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롤러에 매달아 잡아당기면 배 위에서 엇갈린 쇠사슬은 조여져서 상처를 냈다. 그들은 그의 어깨와 손목뼈가 어긋날 때까지 그런 식으로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뼈는 즉시 외과 의사에 의해 맞추어졌다.

그렇지만 그 정도 잔인함에 만족하지 못한 이 야만인들은 그에게 즉시 두 번째 고문 때 당한(가능하면 더 날카롭게) 고문을 가했다. 그런 뒤 그는 감방에 끌려갔고 외과 의사는 어긋난 뼈를 맞추어 주었다. 그에게는 감옥에서 나을 때까지 이러한 고문이 계속되었다. 그가 이렇게 자주 고문을 당함으로써 얼마나 끔직한 고통을 당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팔다리의 관절은 다 어긋났고, 상처와 지침으로 인해 몇 주 동안은 손을 입으로 올리지도 못했다. 그의 몸의 뼈가 자주 어긋남으로 인해 염증이 생겨 퉁퉁부어 올랐다. 그는 석방된 후에도 이 잔인한 고문의 결과로 평생토록 극심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재판관에게 잡힌 불행한 여자들도 연약한 여성이라 해서 봐주지 않고 남자 죄수들과 같은 심한고문을 당했다.(*) 출처 / 기독교순교사화(존 폭스 원저, 머리 킹 편저, 생명의말씀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