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8) 주님과의 교제와 성도의 교제를 믿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8)
주님과의 교제와 성도의 교제를 믿음

33631제 21 주일(문 55)

요절 :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 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 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 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2-25)

문 55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답 : 첫째, 모든 그리고 각각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의 모든 부유하심과 은사에 동참하며 그 분과 교제하는 자들입니다. 둘째, 각 성도는 주께서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이익과 복지를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사용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54문에서는 ‘거룩한 공회’에 대하여, 제 55문에서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음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우리는 믿음의 대상으로 삼위 하나님뿐 아니라 교회를 믿음의 대상으로 고백한다. 이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믿음의 대상으로 교회를 섬길 때 갖는 풍성한 영적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음을 알아야 됨을 교훈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주셔서 친히 값 주고 사신 지체이며, 이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삼위 하나님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과정이 교회 속에서 이루어짐을 믿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칼빈 선생은 교회를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이는 교회가 성경대로 성령과 말씀 안에서 성도들을 낳고 양육하는 주님의 몸 된 지체로서의 영광스러운 것임을 의미한다. 이제 이 구체적으로 지체의 영광된 모습을 공부해 보기로 하자. 그 실체가 바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성도의 교제’는 바로 교회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핵심에 해당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요, 성도 상호의 관계성이고 교제임을 가르쳐 준다.

1. ‘성도의 교제’의 의미

여기서 교제(交際)라는 말은 ‘사귐’(koinonia, fellowship)을 뜻한다. 즉 서로 마음을 열고 친하게 지내며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의 사도 요한은 이러한 원초적인 관계가 주 예수님과 자신이 가졌던 교제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그는 자신과 동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3년 반 동안 숙식(宿食)을 같이 하며 나누었던 그 친밀한 관계가 바로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 전제(前提)되는 주 예수와의 교제

사도 요한은 ‘요한 1서’를 기록하면서 교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건물이나 사람의 집단적인 모임이 아니라, 서신을 받는 한 사람 한 사람들과 성도로서 믿고 나누는 깊은 교제를 의미할 뿐 아니라, 각자가 먼저 직접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믿음 안에서 경험하고 고백하는 깊은 영적 친밀성을 의미한다.

55문에서는 먼저 성도가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하심과 은사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가르친다. 이는 흔히 교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귐을 의미한다는 점에만 집착하는 나머지 그저 교회 내에서의 사람 사귀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고 그 이전에 성도가 주님과 깊은 교제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성도의 교제’는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변화된 자로서의 성도임을 자각하고 깊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형성된 신앙적 성숙 즉 그리스도와 의 연합된 존재로서 성도간의 교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원리는 이미 우리 주님이 말씀해 주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2) 성도간의 깊은 교제

55문에서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주제는 그리스도의 부유와 은사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다른 성도들의 유익과 복(福)을 위하여 사용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주신 은사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주신 선물이며 임무이다. 이는 받은 은사를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할 목적으로 주신 것을 알아야 함을 교훈한다.

이 지상에 처음 형성된 교회는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신 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의 강림 사건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진정으로 성도 간에 깊은 사귐을 사귀며 형성되었다. 누구 생각과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이 강력한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자연스럽게 모인 회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였고 또한 기쁨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마음을 열고 순종하며 성령님의 인도와 지시를 따르도록 역사하셨을 뿐이다.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에 대해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고 기록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람들이 그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모인 것이 교회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역사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현장에 모여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것을 내어 놓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교제하며 함께 성령께서 하게 하심에 따라 순종하였던 것이다. 그것인 바로 기독교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모인 성도들에게는 각자의 마음속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믿음과 기도 그리고 헌신과 섬김의 과정에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선물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2. 풍성한 사귐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은사

사도 바울은 이러한 현상 즉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각종 은사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반문하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성도 각자에게 필요를 따라서 그 어떤 특별한 선물을 공급해 주신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어떤 특별한 선물이란 물질적(physical gifts) 이기보다는 영적 선물(spiritual gifts)을 의미한다. 즉 믿음으로 주를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어서 그 성도 자신 뿐 아니라 함께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이웃 성도들에게도 함께 큰 유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은사는 참으로 다양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주신 다양한 은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전 12:3-10)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들인가! 이렇게 각각의 성도에게 베풀어주시는 이 은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고 풍성하게 하고 즐겁게 세워 갈 수 있도록 놀랍고 은혜로운 선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져있는 지를 살피고 활용하여 주님의 몸 된 지체로서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 위하여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능력 주시는 대로 적극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교회 전체가 아름다운 주님의 몸임을 느끼고 고백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성도의 영적인 교제를 나눔으로 지체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 나타내어 한 지체를 이룰 때 진정으로 그 지체는 한 몸이 되고, 그 한 몸은 바로 한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 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형성되는 성도들의 교회는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라고 규정했다. 이는 교회는 그 어떤 인간 중심이나 사상 중심의 단체가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모여 한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순종하여 성도 간에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교회임을 가르쳐 준다.
3. 다양한 성령의 은사의 활용

신약의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恩賜) 장(章)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주시는 다양한 은사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모든 성도는 성령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그 은사를 서로 존중해 주고 귀하게 여기며 사도 합력하여 적당하고 조화롭게 사용할 것을 가르쳤다. 이 부분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각 사람이 실제적으로 느끼고 알 수 있게 쉽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0-27)

이렇게 우리 몸의 각 지체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독특한 기능과 필연적 존재감은 우리의 몸의 기능에 있어 반드시 그 기관만의 존재성과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그로 인하여 그 기관의 기능의 다양성으로만 아름답고 풍성한 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생각할 때 부인할 수 없는 이러한 사도 바울의 설명은 성도가 어떻게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인식하고 활용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게 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고르게 하시기 위하여 연약한 지체를 깊이 배려하고 돌아보며 귀하게 우리의 몸을 만드신 것같이 주님의 몸 된 성도들은 이 원리를 깊이 새겨 교회에서 성도들 간의 긴밀한 교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으로 성도들에게 방언 을 강요하거나 같은 은사를 강요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로 인해 그런 은사를 받지 못한 성도는 소외되고 나아가 교회 내에서 위선을 드러내는 폐해가 얼마나 많이 나타나는 알 수 없다. 이는 분명히 성령의 은사에 대한 주관적인 오해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 점에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커졌는지 모르나 실제로는 깊이 병들어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성령께서 주시는 그 다양한 은사들을 어떻게 아름다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 데 활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원리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보고자 한다.

4. 성령의 은사 활용의 기본적 원칙

교회의 주인 되시고 머리가 되시는 예수께서는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헌신된 직분 자들을 세워 교회를 세워 가도록 하신다. 성령께서는 이들 직분 자들을 비롯한 많은 성도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를 섬기도록 하신 것을 어떻게 이들 은사들을 조화롭게 조절하여 주님의 몸 된 지체를 하나로 이루어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이 실제적인 문제를 고린도 교회가 나타낸 다양한 은사를 다루며 한 원칙을 가르쳐주었다.

사실 성도들이 교회에서 이 원칙을 잘 숙지하여 섬긴다면 하나 된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사도 바울은 이 은사의 활용 부분을 다루며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교회의 은사를 설명 한 후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라고 반문하며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28-31)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은사 활용의 원칙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원칙’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 내의 모든 직분 자들이 활용할 은사들은 바로 이 사랑의 원칙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을 가르쳤다. 이 원칙은 명확하게 세상의 원칙과는 차별되는 원리이며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바울은 이 사랑의 원칙으로 교회를 세우며 성도간의 깊은 이해와 관용과 섬김으로 세워 갈 것을 강조하고 그 원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교회 내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각종 은사를 바로 이러한 사랑의 원리 가운데 시행될 때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이뤄지고 완성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가는 원리요 원칙이다. 우리는 교회가 세워져 가고 성도가 교통하게 하는 이 같은 사랑의 원리와 원칙의 원형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밝히면서 예수께서 보이신 사랑의 원칙을 본받아 실행에 옮길 것을 권면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교회를 교회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다양한 사업과 행사로 나타나는 어떤 종교적 규모에 있지 않다. 성령님은 신실한 성도들 속에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바 스스로 낮아져서 사랑으로 섬기는 가운데 서로 깊은 이해와 관용 그리고 존경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인정하고 그 은사가 잘 활용되어지도록 사랑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서로를 돌아보는 신앙 공동체, 사랑과 희생의 믿음 공동체를 이루려는 열심 속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결 론

은사 활용은 성도가 먼저 주님과 바른 관계와 깊은 교제를 통하여 말씀의 원리를 숙지하고 생활화 하여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인격과 성숙한 신앙을 구비하는 것이 중요한다. 그리하여 그런 믿음과 겸손함으로 깊이 성도와의 교제를 나눔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교회가 세속과 다른 모습이 무엇인가? 참으로 고민하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너무 세속적이라는 말을 듣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이익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들을 때 마다 얼마나 경성하고 있는가? 과연 오늘날 세상과 교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다. 교회는 말씀을 선포할 뿐 아니라 성도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 말씀선포와 분리된 성도의 삶은 있을 수 없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2-25)라고 권면한다.

모든 성도는 이점을 명심하여 이 악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야 하며 성도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아름다운 구원의 방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